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가 한강이 말하는

스웨덴 동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불러일으킨 5·18의 기억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한강이 올해노르웨이의 한 문학행사에 초청받아 행한 강연이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북유럽 현지에서 화제를 모으며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2017년 2월 3일 '노르웨이 문학의 집'에서 열린 “Literary Guiding Stars” 행사에서 한강은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과 1980년 광주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던 시기의 일화를 소개했고, 이 강연 전문이 스웨덴 신문 『SVD Kultur Söndag』(2017.2.26)에 실렸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더욱 뜻깊은 지금 독자여러분들과 함께 읽고 싶어 아래 전문을 공개합니다.

여름의 소년들에게

1.

오랫동안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고 있던 것들을 뒤늦게 깨닫고 놀라는 때가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린드그렌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은 시기가 그런 이상한 혼돈을 주었다. 이 책을 1980년에 읽었다고 최근까지 굳게 믿어 왔는데, 이 강연 원고를 쓰기 위해 개정판을 사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처음 번역되어 출간된 것이 1983년이었다는 것을. 나의 기억이 틀렸다는 게 믿기지 않아 번역자의 서문까지 읽고 나서야 내 착각을 인정하게 되었다. 서문에 따르면 번역자 김경희는 1982년 유학생 신분으로 스톡홀름에 머물던 중 당시 일흔네 살이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좋아하던 작가를 처음 만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번역자를 린드그렌은 밝고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김경희는 이렇게 그 순간을 묘사한다.

나를 린드그렌 할머니는 마치 친손녀처럼 안아 주었습니다. 겁에 질려 뛰어든 칼을 푸근히 감싸 안던 마티아스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린드그렌 할머니는 맑고 다정한 눈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꽤나 멀고도 낯선 나라에서 온 이 유학생에게 웬일인지 아주 가깝고도 낯익은 느낌이 드네요. 그 나라에도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이 있거든 나 대신 얼마든지 들려줘요.”

두 사람이 긴 대화를 나눈 뒤 김경희가 시내 공원 모퉁이의 그 아파트를 나온 것은 저녁 7시였다. 그들의 이 만남은 1982년 1월에 이루어졌고 이듬해 7월 20일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것은 바로 그 여름이었다. 1980년이 아니라 1983년의 여름. 아홉 살이 아니라 열두 살의 여름. 비록 연도에는 혼동이 있었지만, 그 계절의 감각만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더운 오후에 이 책을 처음으로 손에 쥐었다. 수유리 언덕배기 집의 조그만 내 방에서, 서늘한 방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세가 불편하게 느껴지면 일어나 앉았다가, 땀이 흐를 만큼 더워지면 다시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가며, 마지막 장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못하고 읽어 갔다.

그러니 나에게 남은 의문은 이것들이었다. 왜 나는 그해가 1980년이었다고 철석같이 믿어 왔을까? 1980년과 1983년의 여름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그것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열정으로 나는 이 책에 빠져들었을까?

 

나는 1970년 11월에 광주에서 태어났다. 내가 아홉 살이던 1980년 1월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는데, 문학 교사이자 젊은 소설가였던 아버지가 수도에서 글만 쓰면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며 직장을 그만둔 것이 계기였다. 나무와 흙으로 지어 검푸른 기와를 올리고 문과 창문에는 유리 대신 하얀 종이가 발라진 정든 한옥을 떠나, 서울 외곽의 수유리 언덕에 있는 양옥집으로 옮겨 갔다. 가족 모두가 새로운 삶에 차츰 적응해 가던 5월 17일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 전해인 1979년 10월, 18년 동안의 군부 독재를 이끌었던 대통령 박정희가 암살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지 7개월 만의 일이었다. ‘서울의 봄’이라고 불린 그 시기를 틈타 또 한 번의 쿠데타를 일으킨 이른바 ‘신군부’ 세력이 마침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불과 4개월 전, 사소하고 다소 즉흥적인 이유로 나의 가족이 떠나온 도시, 내가 태어나 유년을 보낸 바로 그곳, 그때까지 그저 작고 평범한 교육 도시였을 뿐인 그곳에서 계엄에 불복종하는 항쟁이 일어난 것은 그다음 날인 5월 18일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 오후 1시, 수많은 시위 군중들이 모인 도청 앞 광장에서 군대는 집단 발포를 했고, 이후 생존을 위해 시민들이 무장하며 ‘광주 공동체’가 태어났다. 짧고 평화로웠던 시민 자치가 이루어지던 도청으로, 탱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되돌아온 것은 5월 27일 새벽이었다.

신군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일을 폭동이자 내란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나의 가족은 광주에 친지와 친척, 친구 들을 두고 왔기 때문에 그 일의 의미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학살이자 항쟁이었던 그 열흘의 시간. 평범한 사람들이 총상자들을 살리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서 헌혈을 하고, 시장에서 음식을 나누고, 무고하게 살해된 자들을 위한 장례를 날마다 함께 치르며 버텼던 절대 공동체. 어른들은 우리 남매들에게 말했다. ‘밖에 나가서 절대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광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서는 안 돼.’ 그렇게 그 일은 나에게 영영 숨겨야 할지도 모를 무거운 비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해 여름이 지나갈 무렵 내가 문득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 곧 이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우리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 여름으로조차 끝내 넘어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어떤 정치적 각성이라기보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 후 이 년이 흐른 1982년, 아버지가 광주에서 사진첩 한 권을 가져왔다. 증언을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만들어 유통시켰던 책이었다. 이때의 기억을 나는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그 사진집을 아버지가 집으로 가져온 것은 이년 뒤 여름이었다. 누군가를 조문하러 그 도시에 내려갔다가 터미널에서 구했다고 했다. (…) 어른들끼리 사진집을 돌려본 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 책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방의 책장 안쪽에, 책등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놓았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198~99면)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난 서울의 여름, 이상한 열정으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있는 열두 살의 내가 있다.

그건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서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엌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픈 소년 칼에게, 그를 사랑하는 형 요나탄이 말한다. 네가 죽으면 하얀 새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거야. 나는 너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얼마 뒤 집에 불이 나고, 칼을 업고 뛰어내린 요나탄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과연 하얀 새가 되어 창가로 날아온 요나탄이 들려준 말대로, 뒤이어 병으로 숨을 거둔 칼은 낭기열라라는 아름다운 세계에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눈을 뜬다. 그러나 그곳은 아름답기만 한 세계가 아니다. 들장미 골짜기의 텡일이라는 무자비한 독재자가 괴물 카틀라의 힘을 등에 업은 채 사람들을 지배하고 핍박한다. 이웃한 벚나무 골짜기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에게 맞서는데, 요나탄은 ‘사자왕’이라는 그곳에서의 별명대로 용감하고 순정하게 자신의 몫을 다해 싸우는 중이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싸움의 과정에서 연약하고 겁 많은 칼이 서서히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 ‘사자왕 칼’이 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일인칭 화자인 칼이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으므로, 처음부터 나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그를 이해했다. 형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그리고 두려움과 떨림까지.

거기에 더해, 칼이 관찰하는 독재자 텡일의 모습, 그가 조종하는 살인의 화신 카틀라, 그에 맞서 연약한 사람들이 연대하는 과정이 어째서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이 결국 승리하기는 하지만, 그 싸움의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반군의 지도자 오르바르만은 울지 않는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불길한 예감을 기억한다. 그 어두운 예감과 폭력의 기억으로 그늘진―그러나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세계, 낭기열라에서 소년들이 다시 죽음의 형식으로 함께 떠나가는 마지막 장면을 읽다가, 어느새 해가 져서 캄캄해진 내 방의 서늘한 벽에 기대앉아 오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그들의 사랑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그 후 삼십여 년이 흘러, 오슬로로의 여행을 앞두고 이 책을 다시 완독한 지금에야 비로소 내가 왜 연도를 착각해 왔는지 깨달았다. 나의 내면에서 이 책이 80년 광주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1980년 아홉 살의 내가 문득 생각했던, 그 여름을 이미 건너지 못했으므로 그 가을로도 영영 함께 들어갈 수 없게 된 그 도시의 소년들의 넋이, 그로부터 삼 년 뒤 읽은 이 책에서 두 번의 죽음과 재생을 겪는 소년들에게로 연결되어 내 몸속 어딘가에 새겨졌다는 것을. 마치 운명의 실에 묶인 듯, 현실과 허구, 시간과 공간의 불투명한 벽을 단번에 관통해서.

 

 

2.

2012년 겨울부터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한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내면의 투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간의 잔혹함을 증거하는 자료들과, 다른 한편에서 인간의 존엄을 증거하는 자료들 사이에서 나는 분열을 겪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광주는 더 이상 하나의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가 되어 있었다. 신대륙의 학살, 아우슈비츠, 보스니아, 관동과 난징의 학살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그 폭력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연약한 몸짓들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어느 날, 5월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 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기도의 형식을 하고 있는 그 일기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 먼저 이 소설의 맨 앞과 맨 뒤에 촛불을 밝히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를 하고 싶었다. 촛불의 불꽃의 중심을 통과하여, 삼십여 년을 건너 우리에게 오는 넋들의 걸음걸이를 생각했다. 그 불가능한 재생을 단 한 순간이라도 가능케 하고 싶었다. 열다섯 살에 그곳에서 죽어 여름으로 건너오지 못한 소년 동호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으로 떠오르게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다만 애도하고 온 힘을 다해 존엄에까지 가자고 결심은 했지만, 『소년이 온다』를 써 가는 동안 나는 여전히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스스로 흔들리곤 했다. 4장 ‘쇠와 피’ 같은 경우에는 내가 흔들리며 회의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소년에게 매달렸다. 그가 나를 밝은 쪽으로 이끌고 가기를 바랐고, 실제로 그에게 끌려가듯 가까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했다. 그러므로 만일 지금 누군가 나에게 인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폭력보다 먼저, 인간의 참혹보다 먼저, 6장에서 어린 동호가 엄마의 손을 잡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고 느낀다.

그 마음으로 에필로그에 이 대목을 썼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도심과 달리 이곳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얼어 있던 눈 더미가 하늘색 체육복 바지 밑단을 적시며 소년의 발목에 스민다. 그는 차가워하며 문득 고개를 돌린다. 나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 (212~13면)

3.

고백하자면,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그 소년들을 거의 잊은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책들 중 한 권이라는 사실 외에는 실상 많은 것이 희미했다. 그러니 당연히,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 이 오래된 책을 기억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삼십여 년이 흐른 뒤 다시 읽게 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불꽃에 손바닥을 덴 것처럼 놀라며 깨달았다. 열두 살의 내가 어두워져 가는 방의 벽에 기대앉아 이 책을 쥐고, 무엇이 내 눈과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의 의미를. 그 질문들이 여전히 내 안에서 생생히 살아 어른어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사랑하는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그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더듬더듬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한국어로 번역된 린드그렌의 평전을 이어 읽다가, 생전의 작가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의 뉴스들에 유난히 민감했으며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했다는 대목을 발견하고 나는 조용히 짐작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그녀의 고통이 이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배음으로 깔려 있다는 것을. 열두 살의 내가 비밀로서 품고 있었던 어렴풋한 사랑과 고통이, 먼 시간과 공간을 건너 그녀의 사랑과 고통에 잠시 맞닿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거의 불가능한 방식으로 때로 우리가 만남을 경험하는지도 모른다고. 그 경험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우리들의 심장과 목구멍에, 눈물이 고였던 눈에 뜨겁게 새겨지기도 하는 것이리라고.

 

허락된다면, 린드그렌의 이 아름다운 책의 한 대목을 읽으며 나의 이야기를 마치고 싶다.

우리는 시냇가 푸른 잔디밭에 누워 있었습니다. 텡일이라든가 그 밖의 끔찍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차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아침나절이었습니다. 햇살은 맑고 따스했습니다. 어찌나 조용한지 들리는 거라고는 약간씩 거품을 일으키며 다리 아래로 흘러가는 물소리뿐이었습니다. 우리는 푸른 하늘 군데군데 흩어진 흰 구름을 바라보며 행복한 기분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근심 걱정 없이 즐거운 기분이었는데 요나탄 형이 텡일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

“스코르판, 잠시 동안 너 혼자 기사의 농장에 남아 있어야겠어. 나는 들장미 골짜기에 다녀와야 하니까.”

요나탄 형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 혼자는 단 일 분도 기사의 농장에서 살 수 없다는 걸 형은 정말 모르는 걸까요? 만일 형이 텡일의 소굴로 가면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요나탄 형이 아주 야릇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더니 한참 만에 말문을 열었습니다.

“스코르판, 너는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야. 나는 모든 불행이나 위험으로부터 너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싶어. 하지만 이번엔 너를 돌볼 수가 없거든. 다른 일을 위해 있는 힘을 다 쏟아야 하니까. 그런데 어떻게 너를 데려가니? 이건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야.”

나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슬프고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농장에 남아 있으라는 거야? 형은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면서, 나보고 마냥 기다리기나 하란 말이지?”

나는 미친 듯이 소리 질렀습니다.

(…)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해. 나는 꼭 돌아올 거야.”

형은 그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

더는 화가 나지 않았지만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요나탄 형도 내 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친절한 형은 새로 구운 버터 빵에다 꿀을 발라 주었습니다. 또 신기한 옛이야기도 해 주었는데 내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텡일이라는 악당만 자꾸 생각났습니다. 모든 괴물과 악당 중에서도 텡일이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것 같았습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요나탄 형이 그처럼 위험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기사의 농장 벽난로 앞에 앉아 편안히 살면 안 될 까닭이 뭐란 말입니까? 그러나 형은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래?”

내가 다그쳤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

어느덧 밤이 깊었습니다. 벽난로의 불길도 잦아들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문간에 서서 요나탄 형이 말을 타고 안개 속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벚나무 골짜기는 온통 새벽안개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형이 점점 멀어져,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2017년 5월

한강

2024년 10월 10일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대한민국의 한강 작가를 발표 하였다. "한국의 한강 작가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썼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냈습니다"'고 수상 이유를 발표 하였습니다.

앤더스 올드 노벨문학상 위원회 위원장은 "한강은 그녀의 작품 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직면 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 냅니다. 그녀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고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습니다."라고 평했습니다.

안나 카린 팜 노벨문학상 위원은 "한강은 매우 특별한 작가 입니다. 한강은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매우 풍부하고 복잡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올해 노벨문학상을 한강에게 주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의 평가와 결정이 항상 관련이 있는건 아니지만 우리가 찾는 것은 항상 문학의 수준 입니다. 한강은 전세계 많은 사람들과 대화할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 합니다. 작가의 주요 주제가 생존에 관한 것이기 때문 입니다. 트라우마와 고통과 상실에 글을 쓸때,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이든 여러 세대에 트라우마를 준 역사적 사건이든 그녀는 항상 같은 연민과 공감으로 글을 씁니다. 이는 작가로서 매우 탁월한 점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녀의 많은 작품을 좋아하고 푹 빠져 읽었기 때문에 말하기가 어렵긴 합니다만 '소년이 온다(Human Acts)가 아주 아주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 작품은 매우 끔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매우 부드러운 한강의 스타일이 잔인한 권력에 대항하는 힘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 입니다."라고 평했습니다.

 

 

2000년 문예지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한강의 자전소설 <침묵>에서 한강은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의 인생에 이르러 성취하겠다는 식의 소유욕에 염증을 느꼈다"며 "잔혹한 현실의 일들을 볼 때면 고민 없이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한강에게 남편은 "세상은 살아갈 만도 하잖아? 그렇다면 한 번 살아보게 한다고 해도 죄짓는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한강은 "그 아이가 이런 생각에 이를 때까지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올지, 과연 빠져나올 수 있을지"라며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는 몫도 결코 아니고…어떻게 그것들을 다시 겪게 하냐"고 우려했다.

 

그러자 남편은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라며 "여름엔 수박이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잖아"라고 했다. 이어 "그런 것 다 맛보게 해 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 주고 싶지 않냐"고 되물었다. 남편의 말에 느닷없이 웃음이 나왔다는 한강은 "다른 건 몰라도 여름에 수박이 달다는 건 분명한 진실로 느껴졌다"며 "설탕처럼 부스러지는 붉은 수박의 맛을 생각하며 웃음 끝에 나는 말을 잃었다"고 회상했다.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당하고 이념으로 갈라지고 독재와 군부 정권으로 인해 국민들이 고통을 당한 근현대사의 역사가 있죠. 2024년 현재도 변하지 않았죠. 한강 작가는 그런 역사적 사실을 인간적인 연민의 시선으로 보죠. '죽음' 보다는 '생'의 이면을 들여다 봤죠. 아픈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하지만 삶도 계속 되어야 한다고 역설 하죠.

 

“굿판의 무당 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연기를 발산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1992년 11월 23일 연세춘추에 실린 한강의 시 ‘편지’를 심사했던 정현종 시인에게 한강의 글은 ‘무당의 춤사위’와 같았다. 당시 연세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이었던 한강의 시는 정 시인의 눈에는 ‘열정의 덩어리’이며 ‘풍부한 에너지’였다. 그에게 한강은 능란한 문장력으로 잠재력을 꽃피울 날을 기다리는 꽃망울이었다.

정 시인이 기대한 한강의 잠재력은 32년 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이름으로 만개했다. 학생이자 시인, 소설가로 곁에서 지켜본 ‘멘토’이자 ‘동료’로서 한강을 지켜봐온 정 시인은 한강에게 여전히 ‘무당같은 기질’이 남아있다고 회상했다.

“한강이 학부 2학년일 때 각자 써온 작품을 읽고 낭독하면서 서로의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어떤 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강의 시를 읽고는 신들린 느낌을 받았다는 기억은 선명합니다.”

정 시인은 “원래 한강이 조용한 성격이라 그런 평가를 듣고도 차분했다”며 “지금은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그의 시작은 시였고 시에서도 특출났다는 점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졸업 이후에도 안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작품에 대해 논의한다고 했다. 정 시인은 한강의 작품 중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가장 잘 읽은 작품으로 꼽았다. 정 시인은 “나는 소설은 잘 모르지만 한강이 보내주는 책은 다 읽는다”며 “문장이 매우 개성적이고 형식이 독특했던 두 책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2012년 한강의 연세대 석사 과정 논문을 심사했던 정과리 문학평론가도 한강을 ‘조용하게 강의를 듣고 가던 학생’으로 회상했다. 당시 한강은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건축가였던 이상을 온전하기 이해하기 위해 문학과 미술을 동시에 접근하는 흔치 않은 논문을 써냈다.

정 평론가는 “이상은 건축학도로서 그림도 잘 그렸기에 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접근도 필요했다”며 “이상의 그림과 문학을 동시에 분석한 논문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지만 한강이 그런 연구를 했다”고 평가했다.

한강의 작품이 인간 내면의 탐구를 시작으로 사회적 현상까지 이어지는 확산성을 가진 점도 호평했다. 정 평론가는 “초창기 한강 작가는 주로 개인의 내면 탐구에 대한 작품을 썼지만 후기에는 초창기의 내면 탐구에 역사적 사건을 종합해 성찰을 이끌어 내는 작품을 썼다”며 “가장 잘 읽은 작품은 식물성과 탐미주의가 부딪히는 ‘채식주의자’”라고 말했다.

한강과 같은 학번으로 연세대를 다녔던 조강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졸업 후 평론가로 한강과 마주하며 30년 넘는 인연을 이어왔다. 조 교수는 “한강이 등단하고 첫 장편소설을 썼을 때 평론가들이 ‘젊은 마에스트로의 탄생’이라고 칭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한강의 글에 대해선 “신인들이 보여주는 경쾌함과 가능성을 넘어 처음부터 자기의 문장으로 자신의 세계를 잘 보여주곤 했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한강은 고유의 집중력으로 질문을 끝까지 집요하게 밀고 가는 작가”라며 “문학을 통해 우리 시대와 사회의 증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는데 능하고, 그것을 시적인 문장으로 잘 써나가는 작가”라고 강조했다.

<소년이 운다> 등 에서 "고통이 나를 부수고 또 부수는 걸 견디면서. 작업실에서, 지하철에서, 횡단보도에서, 부엌에서, 이불 속에서 이를 물고 울고 있는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조금도 미치지 않았다. 무고한 소년들에 대한 폭력과 태극기에 휘감겨진 소년들의 차가워진 몸, 결국 영을 잃고 만 어머니들을 마주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서는 찌를 듯한 먹먹함에 누군가를 의식할 겨를도 없이 지하철에서 한참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읽는 이로서의 슬픔은 넘치도록 느꼈지만 쓰는 이로서의 슬픔은 미처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이미 모든 사물 위로 아련히 어려 있고, 놀라 눈을 감으면 어두운 눈꺼풀 위로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그 느낌이 강한 슬픔과 닮아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푸른 돌’에서는 자살을 앞둔 여인이 20여년 전의 첫사랑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고등학생이었을 엄마가 쓴 시화집에서 K에 대한 감정을 보았을 때의 감정과 닮아 있었다. 희랍어 시간에서도 사랑에 대한 상실감과 회한이 느껴졌지만 푸른 돌의 주인공은 삶의 의지를 잃어가고 있던 터라 그 감정이 더 크게 덮쳐왔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광주는 점점 잊혀졌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군인이 아저씨가 아니라 군인동생이 된 나이가 되었어도, 광주는 나에게 계속 무서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책의 주인공인 동호는 15살의 중학생이다. 나는 고작, 사진을 보고 악몽을 꿨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외면했던 시간들과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하얀소복을 입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어머니들을 봤다. 그건 노래가 아니라 외침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노란벽이 너무 궁금했다. 오빠가 본 것을 나도 봤다. 한강이 책에서 본 것을 나도 봤다. 근한달 악몽을 꿨다. 군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숨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뛰어들어갔다. 엄마한테 계엄군이 뭐냐고. 계엄령이 뭐냐고 물었다. 꿈에서 나는 군인들에게 쫓기고, 친구를 버리고 도망가는 비겁한 애였다. 친구를 버린게 미안하지도 않을정도로 무서웠다."

"누나가 햇감자를 쪄줬지, 혀를 데어 가며 그걸 후후 불어먹었지. 설탕같이 부스러지는 수박을 먹었지, 새까만 보석 같은 씨앗들까지 꼭꼭 씹어 먹었지. 국화빵 봉지를 스웨터 속 왼쪽 가슴에 품고 누나가 기다리는 집으로 달렸지, 두 발은 얼어서 아무 감각이 없었지, 심장만 활활 타는 것 같았지. 키가 자라고 싶었지.팔굽혀펴기를 마흔 번 연달아하고 싶었지. 언젠가 여자를 안아보고 싶었지. 나에게 처음으로 허락될 여자. 얼굴을 모르는 그 여자의 심장 언저리에 떨리는 손을 얹고 싶었지."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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