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문재학 열사의 영정 사진과 어머니 김길자씨, 한강 <소년이 온다> 책

대한민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 속 주인공인 고 문재학 열사가 과거 한 작가의 집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이 소설은 당시 ‘막내 시민군’ 문 열사를 모티브로 한 주인공 동호의 아픔을 다뤘다.

과거 한 작가의 생가가 있었던 광주 북구 중흥동을 찾아갔다. 한 작가의 생가가 있던 자리에는 기존 건물을 허문 뒤 1997년 2층 조립식 주택이 들어섰고, 현재 휴대전화 판매점으로 운영 중이었다.

한 작가는 1977년 광주 북구 효동초에 입학해 1979년까지 다니다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광주에 살 당시 그의 생가는 효동초에서 500m 거리였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문 열사의 집은 효동초 바로 옆이었다. 문 열사는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이 집에 살았다. 한 작가와 문 열사의 집은 직선거리로 280m 떨어져 있었다. 효동초는 5·18민주화운동이 처음 시작된 전남대 정문 근처에 있다.

광주상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문 열사는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이 쏜 총에 숨졌다. 이후 광주 북구 망월동 묘지에 가매장됐다가 10일 후 가족들에 의해 신원이 확인됐다.

문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85)는 14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가 2010년경 효동초 인근 집을 찾아와 두 시간 동안 아들의 사연을 듣고 갔다”고 했다. 김 씨는 당시 한 작가에게 “1980년 6월 7일경 생사불명이던 아들이 가매장된 망월동 묘를 파 보니 관이 2cm 두께의 너무 얇은 합판으로 만들어져 관을 들면 시신이 떨어질 것 같았다. 시신은 알몸 상태로 광목천에 싸여 있었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김 씨는 “노벨 문학상 뉴스를 보고 기쁨과 고마움의 눈물이 흘렀다. 소설로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려줘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문 열사의 누나 미영 씨(62)는 “한 작가가 같은 동네에 살았던 동생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은 우연이지만 동시에 인연”이라고 했다. 한편 광주시는 이날 한 작가의 부친 한승원 작가와 딸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사업과 관련해 논의했다. 한승원 작가는 “딸은 (문학관 등) 모든 건물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54) 작가의 숨결이 닿은 장소를 따라 시민들의 ‘문학 성지순례’가 이어지면서 서울 종로구 서촌 일대가 들썩이고 있다. 서촌은 한강의 서울 자택과 그가 운영하는 책방이 위치한 동네다.

 

대한민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집 겸 작업실로 알려진 종로구 통의동의 한옥 주택 문이 굳게 잠겨 있었지만, 전날까지만 해도 대문 앞에 즐비했던 문학 관련 단체·재단의 축하 화환과 꽃다발들은 자취를 감춘 모습이었다.

앞서 주말이었던 지난 13일 이곳을 지나가던 관광객들은 한강 작가의 집이라는 말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 도란도란 책 이야기를 나누거나 인증 사진을 찍기도 했다.

경기 분당에서 아내와 함께 서촌을 찾은 한재원(65)씨는 “평소 한강 작가의 팬이라 좋은 기운을 받으러 한강의 책방부터 집 앞까지 발자취를 따라와 봤다”며 “이왕 온 김에 윤동주 하숙터·이상의 집 등 서촌 곳곳 문학 관련 스폿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트를 나온 이모(28)씨도 “서촌에 자주 놀러 왔지만, 이번엔 감회가 새롭다”며 “옛 예술가들이 남긴 흔적들을 따라가 보고 있다”고 했다.

이날 한강이 자택 인근 통의동에서 운영하는 독립서점 ‘책방오늘’은 휴업 상태였지만,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앞서 지난 11일 책방오늘은 수상 발표 후 몰려드는 손님과 취재진에 “당분간 책방을 쉬어간다”며 “다시 문 여는 날은 후에 공지하겠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임시 휴업 소식을 전했다.

일부 문학 팬들은 한강의 책을 들고 책방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인증 사진을 찍기도 했다. 책방 간판 아래서 기념 촬영을 하던 무악동 주민 김모(70대)씨 부부는 “문학계의 경사이며 한국의 경사”라고 감격했다.

책방 문 앞엔 시민들의 꽃다발들과 “아프고 서러운 시절을 지나온 이에게 위로이며 희망”이라는 이웃 주민의 쪽지와 “내 나이 70 평생 이렇게 설렌 날이 있었는지, 내 생애 이런 순간이 오다니 감사하고 용기에 박수 드린다”는 노인의 편지도 놓였다.

동네 상인들은 수상종로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시인 윤동주와 이상 등의 발자취가 담긴 장소에도 덩달아 활기가 돌았다. 서촌 한옥마을에는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터와 이상 시인의 집터, 박노수 화백의 미술관 등이 위치해 있다.

인왕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던 A씨(30대)는 누상동의 윤동주 하숙집터 앞에 잠깐 서서 초등학생 자녀들에게 시인을 소개하고, 한강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재영 종로구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은 “문학·예술계 거장을 배출한 종로가 한강 작가의 수상 덕에 문화 중심지로 한 번 더 발돋움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종로구청은 통인시장 앞에 ‘630년 종로의 자랑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종로문화재단 관계자는 “한강 작가 수상을 기념해 구청과 관련 행사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한강에 대한 목격담을 말하기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였다. 한강 자택 인근의 한 식당 사장은 “우리 집 음식이 소화가 잘 된다며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끼도 드시고 가셨다”며 “(지나가는 행인들이 혹시나 알아볼까봐) 창가 쪽엔 절대로 앉지 않았다”고 말했다. 근처의 한 카페 사장은 “평일에 (한강 작가님이) 자주 오셨지만, 그 이상은 노코멘트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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